Essays도취도람 도취도감 : 함께 취하는 즐거움 by 문유진


시작하며 01

도취도람 도취도감 : 함께 취하는 즐거움* 


문유진     


   도자는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니, 도자는 그 자체로 무수한 이야기다. 역사이자 미학이고, 문화다양성의 상징이자 딜레마의 장場이다. 도자에는 인류의 역사와 사회사가 감입되어 있다. 또한 도자는 지역, 종교, 재료, 기술의 차이가 경쟁이나 대립 대신 대화와 수용을 통해 상호 교환되고 각기 발전을 이루며 기술적 문화적 다양성을 증폭시킨 물질문화로, 가히 호혜의 상징이라 부를만하다. 도자는 실용성과 심미적 효과의 균형을 위하여 분투해 온 예술이자 과학이며, 기계와 손, 산업과 표현의 기로에서 혼란과 선택을 거듭하는 진화의 산물이다. 오래된 것이고, 그래서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래서 그 향취가 풍부하다. 그렇게 우리 시대의 도자는 여전히 발굴되기를 기다린다. 복잡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풀어내 보일 순간을 기다린다. 

   도취도람 도취도감陶醉陶覽 陶醉圖鑑은 ‘도자의 아름다움과 신비한 매력에 취醉하여 그것을 취取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적인 가이드를 제공하는 기획 시리즈이다.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전시 형식의 도취도람, 책으로 또는 웹상에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과 함께 흥미로운 비평을 제공하는 도취도감이 짝을 이루어 동시대 도자의 다차원적 스펙트럼을 풀어낸다. 우리 도자와 그 태토에 스며들어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굴하고, 상투적이지 않은 짜임새 있는 기획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도자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말이다. 

   ‘도취’는 자연이나 예술의 아름다움에 황홀하게 취하여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뜻을 가진 말로, ‘질그릇 도陶’ 자와 ‘취할 취醉’ 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점에 착안하여, 도자에 취하여 도자를 취하라고 ‘도취도람 도취도감’을 만들었다. 하지만 ‘도취도람 도취도감’은 무엇보다도 함께 취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동시대 작가와 작품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저마다의 이야기에 함께 취해보자는 초대인 셈이다.

‘도취’라는 말의 유래를 좀 더 들여다보면, 좋은 벗과 함께 술에 흠뻑 취하고 싶다는 8세기 중국 시인의 시구와 만나게 된다. 당나라 전성기에 활동했던 시인 최서崔曙, 704~739의 시 <9월 9일 망선대에 올라 팽택 현령 유용에게 바치다九日登望仙台呈劉明府容>1)에서 화자는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며 속세를 뒤로 하고 떠났던 옛 선인仙人들을 그리워하며 그들을 닮은 벗과 술을 나누며 취하고 싶다고 노래한다.2)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은 당시 장시성 팽택 지방의 현령이었던 자신의 벗 유용을 도연명陶淵明(365~427)에 빗댄다. 중국 동진시대 관리였던 도연명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생활에서 인생의 참된 기쁨을 찾을 수 있다고 선언하며 80일 만에 팽택 현령직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떠나 시를 쓰며 은사隱士의 삶을 살았다. 시인은 그런 도연명이 자연에서 즐겼던 국화주3)를 자신의 벗과 함께 나누고 도연陶然하리라, 즉 거나하게 취해 그 즐거움을 만끽하겠노라 한다(且欲近尋彭澤宰,陶然共醉菊花杯). 

   이와 같은 ‘도연공취’의 소망은 어쩌면, 복잡한 세상과 인연을 떠나 한적한 생활을 영위하던 선인들에게도 홀로 마시는 술보다는 꽃과 바람을 담을 술을 나누며 ‘함께 취할’ 이웃이 더 달고 즐거운 존재였음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도연명은 거의 모든 시에서 술 또는 술과 연관된 단어들을 사용했는데, 여기서 술은 마음을 달래주는 “위로의 음식”이자 “즐거움을 구가하고 인생을 긍정하는 수단”인 동시에 교유의 수단, 즉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켜 주는” 통로였다고 해석될 수 있다.4) 도연명과 최서에게 그러했듯이, 우리가 세상살이의 번뇌에서 비껴나 흥취興趣를 돋우고자 할 때, ‘혼술’보다는 마음을 알아주는 이와 함께 나누는 ‘벗술’이 더욱 큰 감흥酣興을 일으킬 것이다.

   이렇듯 어원학적으로 도취의 ‘도陶’는 사실상 ‘술에 취한 상태’를 지시하는 것이지만, ‘도’가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의 시어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12세기 아랍의 신비주의 시인 이븐 알 파리드(Ibn al-Farid)의 통찰은 술과 도자를 하나로 묶는 은유에 힘을 실어 준다. 포도주의 신비한 힘을 찬미한 시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아는 그것의 속성이란... 물도 아니고, 공기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흙도 아닌데, 물처럼 순수하고 공기처럼 미묘하며 불처럼 빛나고 흙처럼 영혼을 담는다.” 여기서 ‘그것’은 포도주다. 그러니 상상력을 조금 더 보태면, 국화향 가득한 술을 담은, 물과 공기, 불과 흙으로 빚어진 도자기의 아름다움에 취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도취도람 도취도감’의 목표는 옛 시인들이 읊었던 ‘공취감흥共醉酣興’의 태도와 방법론을 취하여, 도자를 통해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 아름다움과 위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창작, 매개, 수용의 각 단계에서 작가, 연구자, 관객·소비자와 함께 호흡하며, 도자 예술의 영역 확장을 위한 다음의 노력을 지속해 보려고 한다. 

   우선, 작가와 함께 창작 실험을 해나가며 ‘도자 너머의 도자’를 탐구한다. 개별 작가의 대표적 스타일, 재료, 기법을 조명하는 동시에, 작가가 고유의 양식과 환경에서 혼자서는 시도하기 어렵거나 시도한 적 없는 예술적·기술적 접근과 표현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작가들이 새로운 주제나 기법을 연구하거나 다른 장르의 예술가·전문가를 만나 함께 작업을 하면서 얻은 공취의 경험과 에너지는 작품에 스며들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렇게 계속, 자연스럽게 작업실 바깥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다.  

   다음으로 관객과 독자에게는 흥미로운 도자 감상 및 수집 가이드를 제공한다. '나의 취향과 풍경'에 맞는 작품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수집하고 사용하는 재미와 기쁨을 보다 많은 이들이  향유하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도취도람은 동시대 작가와 작품, 창작에 관련된 이야기를 발굴하고, 도자를 감상하고 향유하는 구체적 방법과 선별적 수집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도취도감은 작가론과 작품해설을 비롯한 비평 텍스트와 사진, 영상 등 전문적이고 풍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수록한다. 나아가 주요 텍스트의 영문 간행과 온·오프라인 동시 유통을 통해, 우리 도자의 국외 미술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지식 기반화에 힘쓰고자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취도감이 앞으로는 국내외 필자를 발굴하고 생명력 있는 저술을 독려하는 열린 플랫폼으로서, 동시대 도자 연구·비평 분야에 작은 활기를 빚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와 같은 ‘함께’의 방법론, 즉 협업, 향유와 연구 플랫폼의 확대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도취’의 순간을 선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도취도감은 도자와 예술에 대해 조예가 깊은 애호가뿐만 아니라, 관심은 있어도 ‘잘 몰라서’ 망설이거나,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입문자에게 친절한 가이드가 되고자 한다. 누구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매혹적인 도자 한 점 쯤 자신의 삶 속에서 자유로이 향유할 수 있도록, 작지만 단단한 길잡이가 될 수 있길 희망하며. 


“취하지 않은 자, 세상을 산 게 아니로다.”6)


(2020년 8월)


1) 칠언율시七言律詩로, 하나의 구가 7자로 총 8구로 구성되고 2구가 짝을 이루어 기승전결로 나누어지는 형식의 근체시이다. 글자 수, 시구의 수, 격률처럼 엄격한 규칙을 지켜야 하는 율시의 형식에서도 풍경과 서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시로 평가받는다. 청나라 학자 손수孫洙, 1711~1778가 310 수의 당시를 모아 편찬한 시선집 《당시 삼백수唐詩三百首》 (1763) 제4권에 수록되었다.  전관수 편저, 『한시작가작품사전』(국학자료원, 2007). 온라인 참조: 〈한시작가작품사전〉, 《네이버지식백과》. (사)전통문화연구회 동양고전종합DB (http://db.cyberseodang.or.kr)에서 원문 인용, 번역문 및 해제 참고. 

2) 漢文皇帝有高臺, 此日登臨曙色開。三晉雲山皆北向, 二陵風雨自東來。關門令尹誰能識, 河上仙翁去不回。且欲近尋彭澤宰,陶然共醉菊花杯。최서, 〈9월 9일 망선대에 올라 팽택 현령 유용에게 바치다〉, 《당시 삼백수唐詩三百首》 제44권. (사)전통문화연구회 동양고전종합DB  (http://db.cyberseodang.or.kr/front/alphaList/BookMain.do?bnCode=jti_4c0102&titleId=C179)에서 원문 인용, 번역문 및 해제 참고. 

3)  ‘국화술잔菊花杯’은 국화주를 은유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도연명은 술과 국화를 사랑했던 것으로 유명한데, 도연명이 쓴 시와 도연명에 대한 기록에서 모두 이 둘은 빈번히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음주飮酒〉일곱 번째 시는 “가을 국화가 아름다워 이슬에 젖은 꽃을 따서, 이 꽃을 근심을 잊게 하는 술 위에 띄웠더니 나를 멀리 보내 세상을 잊게 한다(秋菊有佳色 裛露掇其英)”는 구절로 시작한다. 당나라 이연수(李延壽)가 쓴 역사서 《남사南史》의 〈은일전隱逸傳〉은 도연명이 “한번은 9월 9일인데 술이 없어서 밖으로 나가 집 주변 국화꽃 떨기 속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왕굉(王宏)이 보내온 술이 도착한 것을 받아서는 곧바로 마시기 시작하여 취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4) 도연명의 시에서 술 또는 술을 마시는 행위가 나타내는 의미를 9가지 항목으로 분석한 흥미로운 논문을 참조했다. 송용준, 〈도연명 시에 나타난 ‘술’의 의미〉, 인문논총 제65집(2011), 308~317.

5) 마틴 링스(Martin Lings)가 영어로 번역한 우마르 이븐 알 파리드(Umar Ibn al-Farid)의 시, “The Wine-Song (Al-Khamriyya)”의 49행~52행. 다음을 참조 : https://www.themathesontrust.org/library/the-wine-song-al-khamriyya (2020년 8월 10일 접근)

6) Ibid., 93행. 다음 책의 번역을 따랐다. 장 그르니에, 『일상적인 삶』, 김용기 옮김 (민음사, 2001), 65. 



*이 글은 도취도감 상상동물도(더리튼핸즈, 2020)에 '펴내는 글'로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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